🌳나의 정원이야기: 수레국화, 작은 시작이 주는 큰 위로
올해 여름, 나는 작은 씨앗 봉지를 열어
수레국화를 뿌렸다. 두 번째 도전이었다.
6월에 뿌린 그 씨앗들이 시간이 지나며 마침내 꽃을 피웠다.
많지는 않았다. 정원 한편에 몇 송이만 하늘거렸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충분히 행복했다.
작은 꽃이 주는 기쁨은 생각보다 크고 오래갔다.
🏵수레국화라는 이름의 매력
나는 꽃의 모습만큼이나 ‘수레국화’라는 이름을 좋아한다. ‘수레’라는 조금 낯선 단어와
‘국화’라는 친숙한 단어가 만나 묘한 신비로운 울림을 준다.
어감만 들어도 시적이고, 문학적이고, 오래된 이야기 속에서 건져 올린 듯한 느낌이다.
실제로 수레국화는 외국 명작소설이나 시에 종종 등장하는 꽃이다.
영어로는 ‘Cornflower’라 부르는데, 청초하고 순수한 파란빛으로 유명하다.
유럽에서는 자유와 순수의 상징으로 사랑받아왔고, 때로는 연약하지만 강한 생명력을 지닌 영혼을 비유할 때 쓰였다.
그래서일까. 이름만 들어도 마음이 흔들리고, 오래된 소설 속 구절이 떠오르는 것 같다.
연약하지만 무리지어 피어나는 모습

정원에 피어난 수레국화는 많지 않았지만, 그 몇 송이로도 충분히 감동을 주었다.
가느다란 줄기에 작은 꽃송이가 매달려 바람에 흔들릴 때,
그 모습은 연약해 보이면서도 동시에 강했다.
무리 지어 흔들리는 장면을 떠올리면, 마치 사람들의 삶을 보는 듯했다.
혼자서는 작고 여려 보여도 함께 모이면 더 큰 아름다움과 힘을 만들어낸다.
나는 꽃 앞에 서서 한참 동안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눈에 보이는 꽃은 몇 송이뿐이었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정원 전체가 파란빛으로 물든 것만 같았다.
🌼문학 속의 수레국화
문학에서 꽃은 종종 삶과 사랑, 혹은 존재의 은유로 사용된다. 수레국화 역시 그러하다.
외국 소설 속에서는 청초한 파란빛을 통해 젊음이나 자유, 혹은 상실과 그리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 내가 좋아하는 부분은 바로 그 상징성이다. 연약하지만 당당히 피어나고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오래 기억되는 존재. 그것이 수레국화다.
‘데미안’ 같은 명작을 떠올리며 혹시 거기서 만난 꽃이었나 싶었지만, 사실은 아니었다.
그러나 상관없다. 중요한 건 소설 속에서든, 내 정원 속에서든 수레국화가 내게 똑같은 감정을 준다는 사실이다.
작은 존재가 삶을 환히 비춘다는 감정 말이다.
내 정원에서 피어난 이야기
정원 가꾸기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내가 심은 씨앗이 시간과 계절을 따라 조금씩 자라나
어느 날 문득 꽃을 피운다. 늘 싱싱하지는 않고, 때로는 시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조차 소중하다. 내가 손수 뿌린 씨앗이기 때문이다.
수레국화 몇 송이는 내 정원을 화려하게 물들이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것은 내 일상에 잔잔한 위로가 되었다.
매일 스쳐가는 시간 속에서, 작은 꽃 하나가 내 마음을 붙잡아주었고,
“여기서도 아름다움이 자라난다”는 메시지를 전해주었다.
🌺작은 꽃, 큰 위로
나는 수레국화를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많이 피어야만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적게 피어도 충분히 아름답고, 오히려 귀하고 소중하게 다가온다.
수레국화는 나에게 삶의 교훈을 준 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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